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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일 오후 03:17 - 수정됨
[ 친구의 기일에 중언부언 하다 ] 
 
몇 일 동안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내 주변을 맴돌았던 것은,  몇 해 전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그리웠던  이유였음을 알게 됐다. 
 
유난히 웃음이 많고 명랑했던  그녀가  병실에서 나를 바라보던  마지막 눈빛과 함께 그녀가 나에게  해주던 말이 떠오른다.  
 
"  꼭 , 행복하게 살다 와야 해"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
그녀는 허망하리만큼 빠르게 떠났다.
끝까지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던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병실에서도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자녀들에게 손편지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 친구야!이제야 알겠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물 헤프게 쓰듯 생각없이 줄줄 흘려보내며 살아왔는지를...
다시 살 수 있다면, 진짜 나로 살고 싶었어.
친구야, 너도  이제 주변 그만 둘러보고 ....: 
 
"너를 위해 남은 시간을 잘 쓰길 바래." 
 
이말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 속에 둥둥거리는 북소리처럼 내 마음을 수시로 울리고 있다.
기운이 없어 힘들어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맑고 단호했다. 그녀를 보내고 맞이한 몇 해의 시간,
그녀의 기일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
" 내 생은 진심으로 행복한 '생'일까?"
" 딱, 한 번의 인생을 너무 허투르 사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어차피 한 번밖에 없는 삶이다.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 되돌릴 수도없는 인생,
마치 이 생이 반복될 것처럼,  
마치 내일이 반드시 올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친구가 애절한 눈빛으로
마지막으로 간곡히 남긴 말 ,
' 너를 위해서 ' 라는 말이
가슴에  여린 가시처럼 콕, 박힌다. 
 
자신을 던지는 삶,
그리고 스스로 ' 잘 살았다!' 명분을 만드는 삶,
나뿐 아니라, 내 나이때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렇치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그렇게 살아가는가.
단 한 번 주어진 삶이라면,
우리의 시간은 매순간 자신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혹은 잃지 않기 위해 달려가는 동안 정작 우리는 살아 있는 시간 자체를 잃고 있었다.
스케줄에 매몰된 하루, 목적이 사라진 속도,
깊이를 잃은 관계와 생각 없는 소비 속에서
삶은 어느새 '나'와 무관한 방향으로 떠밀려갔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에 끌려다니며
주체적 삶은커녕, 반사적 생존 속에 머문다.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살아지내는 것에 불과한 나날들, 존재의 자리를 점유하고 있을 뿐, 실존하지 못하는 상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후회 없이, 가볍게, 그러나 의미 있게 이 생을 마무리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회복해야 할까?. 
 
그 답은 아마도 내면으로의 귀환일 것이다.
더 크고 빠르게 나아가려는 의지를 잠시 멈추고
"나는 왜 이 삶을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 그리고 더 깊이 시작해야 한다. 
 
삶은 외부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욕망이 아닌 본질에서
경쟁이 아닌 성찰에서
흐름이 아닌 영혼의 방향에서
삶은 비로소 자기만의 궤도를 그릴 수 있다. 
 
그렇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고요함. 경청. 명상적 태도.이 소란한 시대일수록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크리스챤인 나는 예배를 통해
그나마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지금 이 길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아간다는 건 단지 도착지를 향한 전진이 아니다.스스로 방향을 선택하는 반복된 책임의 연속이다.
그럴 때 비로소 삶은 노동이 아니라 창조가 되고, 투쟁이 아니라 해석의 여정이 된다. 
 
요즘, 나이가 들어가니 부고장이 자주 도착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늘 내 삶을 선명하게 비춘다.
그런 부고들이 삶의 좌표를 되묻게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 수가 많아질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만족보다 아쉬움과 미련이 더 크게 밀려온다. 
 
삶을 다시 나로부터 시작하려면, 때로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오래된 습관처럼 붙어 있던 관계에서 한 발 물러서거나,  수십 년간 하지 않았던 혼자만의 장거리 여행을 떠나보는 일, 혹시라도 본의 아니게 너무 오래 '좋은 사람'으로 살아온 이라면 이번만큼은, '이타적인 삶' 아니 어쩌면 ' 이타적인 척의 삶"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기쁨과 생기를 주는 선택을 하는 일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이 흘러도 함께 늙을 수 있는 한 사람의 벗을 되찾거나 , 찾아가는 일들을 시작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삶에 다시 주권을 돌려주는
작은 혁명이며, 단 한 번뿐인 생을 스스로의 손으로 의미 있게 엮어나가는 시작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땅의 문을 닫는 그날,
"미련 없이 잘 살았다."라는
한마디를 남길 수 있도록, 
 
그래야만 삶이 무겁지 않다.
한 점 미련 없이, 소풍 가듯 떠날 수 있는 생.
그것이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결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말은 결코 우연히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여기, 자신이 결단하고 내리는 선택들과
생각없이 흘려보내지 않고 살아낸 시간들 속에
그 마지막의 의미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쌓일 것이다. 
 
우리가 진짜 자신으로 살고자 결단하는 순간들,
그 하나하나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생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아름답게 단단하게 살다 가는 우리의 뒤안길이
인생 길을 헤매는 어느 누군가에게 미로같은 생의 조용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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