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image
2015년 4월 30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천주교 예수회(Jesuite) 
 
우리나라 천주교인들은 영화 '명량'(鳴梁)을 감상할 자격이 과연 있는가? 
 
한국과 로마 카톨릭의 첫 만남은 참으로 불행했다. 임진왜란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군단의 병사들은 대부분 로마 카톨릭 교회 신자들이었다. 
 
조선 침략 군단의 이름은 ‘그리스도단’(기리시단, 吉利支丹)이고, 그 침략 군단 앞에는 십자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고, 검정색 사제복에 ‘로만 칼라’를 한 로마 카톨릭 교회 사제들이 뒤따랐다. 세스페데스가 이끄는 예수회 소속 사제들이었다. 
 
예수회 사제들은 조선인을 잔혹하게 살육한 자들의 고 백성사를 받아주고, 이른바 ‘성수’를 뿌리면서 조선침략 행렬에 가담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와 민족은 큰일 날 뻔했다. 
 
예수회(Society of Jesus)는 현재 카톨릭 수도회 중 가장 많은 신도와 사제수를 자랑하는 최대의 분파다. 제수이트(Jesuit) 또는 한자음을 따 '야소회(교)'로도 불린다. 남미 출신으로 첫 카톨릭 수장이 된 교황 프란치스코는 예수회 출신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 
 
1549년 7월, 일본 큐우슈우(九州)에 상륙한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의 전도를 받고 천주교를 허용한 일본 최고 지배자였던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예수회 신부들을 만나 명과 조선을 정복하여 전역에 교회당을 세우고 그들 백성들을 천주교인으로 만들겠다고 호언하며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당시 천주교가 포교에 열을 올린 것은 새로 생긴 개신교가 새로운 나라나 대륙에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들어가서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서, 일본에 조총(鳥銃)을 전수한 예수회의 프란시스 사비에르 신부(Francesco Xavier, 1506-1552)는 카톨릭 사제로 예수회 창립 멤버 6인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천주교가 뒤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천주교는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세스페데스 신부(예수회)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군에 종군하여 조선에 전도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 가운데에는 천주교에 개종한 자들이 다수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1611년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天家
康)의 천주교 박해 때에는 무려 21명의 조선인 천주교신자가 순교하였다. 
 
콘스탄틴 이후 바빌론 종교와 그리스도교를 혼합해 만든 거짓 그리스도교인 로마 카톨릭은 마틴 루터 같은 개혁자들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무너져버렸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등장으로 인해 교황은 불안했고 종교재판으로 개혁교회를 뿌리뽑아 없애려 하던 도미니크 수도회도 좌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군사적인 지식에 해박하고 정치적 식견이 풍부한 뛰어난 전략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교황을 알현하여서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세상의 종교를 교황청을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곧 반동종교개혁의 일환인 ‘예수회(Jesuite)’를 개신교를 박멸하기 위해 창설했다. 
 
로욜라는 천주교에선 <성 이냐시오>로 불린다. 그가 창립한 예수회의 지부는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고 대항해를 하며 어디든지 못간 곳이 없었다. 그들은 곳곳에 지부를 설립하고 거짓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리며 정치인들이나 상인들과 거래했다. 우리나라 서강대학교도 예수회가 설립한 대학이다. 
 
기사출처/http://m.cafe.daum.net/ALILANG/ETNE/350?q=%EC%9E%84%EC%A7%84%EC%99%9C%EB%9E%80%EB%A5%BC+%EC%9D%BC%EC%9C%BC%ED%82%A8+
현재 정렬방식 최신순 정렬방식 선택
스티콘 선택

스토리에서도 카톡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있어요!

    댓글 더보기

    우리역사를 바로 알자!역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