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연이와 나 1부 17... 재취
새 해가 되었다.
이른바 해방 정국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은 했지만,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나라는 사실상 둘로 쪼개졌고 민족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해나 이념적으로 갈라져 어제의 동지를 서로 죽이는 참담한 세상이 되어갔다.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박실 마을의 작은 오두막에서 오로지 바느질만으로 세월을 보내는 언연이에게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단지 세상이 어수선하고 마을의 젊은 남정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렁대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한 번씩 밀려 올 뿐이었다. 그런 불안한 마음에 일손이 잘 잡히지 않는 어느 날 계모가 옷감 한 벌을 던져 주며 언연이의 몸에 맞추어 지으라고 한다. 빛깔을 보니 파란 치마에 연노랑 저고리라 초례복은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여념 집 아낙의 나들이 복도 아니 듯 한데, 자신의 몸에 맞게 지으라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계모는 박실에서 30리 쯤 떨어진 굿정 마을에 언연이와 띠 동갑 홀아비가 있는데, 언연이가 그 집에 재취로 들어가기로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계모의 설명에 따르면, 그 홀아비의 전 처는 일 년 전에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고 했다. 언연이의 아버지는 광산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낙동강 주변의 제방공사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그 홀아비를 만나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괜찮아 보여 자신의 딸을 재취로 데리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였다고 한다. 애초부터 언연이의 의사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언연이는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입춘이 갓 지난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굿정이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그래도 새 식구를 맞는답시고 홀아비가 산다는 초가집에는 집안사람들로 북적였다. 굿정이라는 마을이 이씨 집안의 집성촌이라 마을 전체가 잔칫날 비슷한 분위기였다. 신방으로 꾸며진 건넌방으로 안내되어 자리에 앉자 홀아비의 종형수라는 아낙이 옆자리에 앉는데, 동서라기보다는 시어머니같이 보였다. 홀아비의 형님내외도 자식 없이 모두 일찍 세상을 등져 사촌인 자신이 제일 가까운 동서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방문이 열릴 때 “마산 아재”라고 불리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사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흠칫 훑어본다. 언연이는 속으로 “시아버지 되는 양반인가보다.”생각하였다. 시댁 식구들과 인사는 이것도 혼례라고 초야를 치른 뒤에 하기로 되어있어 언연이와 말벗이 되어주는 아낙들만 자기를 소개 할 뿐 그 남정네가 누군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밤이 되고, 북적이던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고 집안이 좀 조용해 졌다. 언연이는 무심히 일렁이는 촛불만 바라보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그 마산아재라는 사람이 말없이 들어왔다. 언연이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사내는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촛불을 끄고 언연이를 덮쳐왔다. 그렇게 언연이는 소박띠기에서 이번에는 마산띠기가 되었다. 후처라는 것을 각인이라도 시키듯 택호마저 전처의 “마산”을 이어 받았다. 하긴 “마산아재”가 재취장가를 갔다고 해서 “박실아재”로 바뀌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언연이는 자신의 두 번째 남편이 자신보다 열두 살 많은 띠 동갑이 아니라 스물네 살 많은 띠 동갑이라는 것을 다음 날에야 알았다.
새 해가 되었다.
이른바 해방 정국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은 했지만,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나라는 사실상 둘로 쪼개졌고 민족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해나 이념적으로 갈라져 어제의 동지를 서로 죽이는 참담한 세상이 되어갔다.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박실 마을의 작은 오두막에서 오로지 바느질만으로 세월을 보내는 언연이에게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단지 세상이 어수선하고 마을의 젊은 남정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렁대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한 번씩 밀려 올 뿐이었다. 그런 불안한 마음에 일손이 잘 잡히지 않는 어느 날 계모가 옷감 한 벌을 던져 주며 언연이의 몸에 맞추어 지으라고 한다. 빛깔을 보니 파란 치마에 연노랑 저고리라 초례복은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여념 집 아낙의 나들이 복도 아니 듯 한데, 자신의 몸에 맞게 지으라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계모는 박실에서 30리 쯤 떨어진 굿정 마을에 언연이와 띠 동갑 홀아비가 있는데, 언연이가 그 집에 재취로 들어가기로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계모의 설명에 따르면, 그 홀아비의 전 처는 일 년 전에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고 했다. 언연이의 아버지는 광산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낙동강 주변의 제방공사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그 홀아비를 만나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괜찮아 보여 자신의 딸을 재취로 데리고 가면 어떻겠느냐고 권하였다고 한다. 애초부터 언연이의 의사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언연이는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입춘이 갓 지난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굿정이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그래도 새 식구를 맞는답시고 홀아비가 산다는 초가집에는 집안사람들로 북적였다. 굿정이라는 마을이 이씨 집안의 집성촌이라 마을 전체가 잔칫날 비슷한 분위기였다. 신방으로 꾸며진 건넌방으로 안내되어 자리에 앉자 홀아비의 종형수라는 아낙이 옆자리에 앉는데, 동서라기보다는 시어머니같이 보였다. 홀아비의 형님내외도 자식 없이 모두 일찍 세상을 등져 사촌인 자신이 제일 가까운 동서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방문이 열릴 때 “마산 아재”라고 불리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사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흠칫 훑어본다. 언연이는 속으로 “시아버지 되는 양반인가보다.”생각하였다. 시댁 식구들과 인사는 이것도 혼례라고 초야를 치른 뒤에 하기로 되어있어 언연이와 말벗이 되어주는 아낙들만 자기를 소개 할 뿐 그 남정네가 누군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밤이 되고, 북적이던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고 집안이 좀 조용해 졌다. 언연이는 무심히 일렁이는 촛불만 바라보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고 그 마산아재라는 사람이 말없이 들어왔다. 언연이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사내는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촛불을 끄고 언연이를 덮쳐왔다. 그렇게 언연이는 소박띠기에서 이번에는 마산띠기가 되었다. 후처라는 것을 각인이라도 시키듯 택호마저 전처의 “마산”을 이어 받았다. 하긴 “마산아재”가 재취장가를 갔다고 해서 “박실아재”로 바뀌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언연이는 자신의 두 번째 남편이 자신보다 열두 살 많은 띠 동갑이 아니라 스물네 살 많은 띠 동갑이라는 것을 다음 날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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